내발자국[동호회]
지적 사기꾼 판치는 한국 지식인 사회
松巖
1998. 2. 21. 07:05
뉴스메이커 (NEWSMK) 경향신문사
문화/과학 98/02/0
6
# 25/166 * 지적 사기꾼 판치는 한국 지식인 사회
요즈음 서양에선 과학전쟁(science wars)이 한창이다. 점점 확대되는
그 전선의 한 쪽엔 과학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쪽엔 과학의 신뢰성을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
과학전쟁이 세인의 눈길을 끌게 된 건 앨런 소컬이란 미국 물리학자가
1996년 미국의 한 문화분야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덕분이다. 그 논문은,
만일 양자역학과 상대성 원리가 통합되면 자유물리학(liberatory physic
s)이 나오리라 주장했다.
그 논문을 실은 잡지가 발간되자 소컬은 그것이 여러 포스트모던 철학
자로부터 인용하고 엉터리 수학으로 그럴 듯하게 치장한 ‘우스개’라
밝혔다. 그가 예측한 대로, 그 잡지의 편집자는 식수(numeracy)가 부족
해서 그럴 듯하게 꾸며진 수학 공식에 든 함정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어 소컬은 프랑스 물리학자와 함께 쓴 〈지적 사기〉란 책에서 프랑
스 지식인이 자신의 저술이 튼실한 바탕을 가진 것처럼 꾸미기 위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과학 또는 수학적 개념을 마구 썼다고 공격했다.
과학전쟁은 실은 뿌리가 깊은 두 문화 논쟁(two-culture debate)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온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대립과 논쟁은
어려운 철학적 문제를 둘러싼 것이고, 자연히 쉽게 풀릴 수 없는 지적
갈등이다.
어쨌든, 소컬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개념을 다른 분야에서 빌려와
자신의 주장을 치장하는 인문학자의 지적 사기를 극적으로 폭로했다.
반론도 거세지만 그의 활동이 좋지 않은 관행을 줄일 것은 분명하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선 그런 활동이 너무 드물다. 실제로는 지적
사기에 대한 비판조차 소개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새로운 세계관〉이다.
그 책은 많이 읽혔고 리프킨은 큰 추종 세력을 거느리게 됐다. 반면에
잘못 적용한 것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엔 그
책만 소개되었지 그것에 대한 비판은 소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틀린 주장이 끼친 나쁜 영향은 서양 사회에서보다 훨씬 컸다.
얼마 전에 번역된 레스터 써로우의 〈자본주의의 미래〉도 자연과학
에서 나온 개념을 경제 분야에 도입해 자신의 주장을 그럴 듯하게 치장
한 경우다. 그는 지질학에서 지판구조(plate tectonics)와 생물학에서
중단된 평형(punctuated equilibrium)을 빌려와 경제적 현상을 설명
했다.
지판구조는 지각이 여러 개의 판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의 움직임이
지각 변동을 일으킨다는 학설이다. 중단된 평형은 생명체의 진화가
대체로 평형을 이룬 종이 조금씩 느리게 바뀌는 시기와 크고 빠르게
바뀌는 시기가 교차한다는 이론이다.
써로우는 지금 세계 경제가 다섯개의 ‘경제 지판’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함으로써 평형이 깨어졌으며, 자연히 새로
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존재가 살아 남으리라 역설한다.
써로우의 주장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는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을 사회적 현상에 도입할 때 나오게 마련인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든 경제 지판은 공산주의 종말과 인공 두뇌력 산업에 의해 지배
되는 시기로의 기술 이동, 이전에 결코 본 적이 없던 인구 구성, 세계
경제, 그리고 지배적인 경제·정치·군사적 힘을 가진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다. 이들 다섯은 성격이 서로 달라 한 범주 안에 넣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움직임 사이에 무슨 상관 관계가 있겠는가?
중단된 평형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원래 진화란 개념이 나온
생물세계에서 종과 같은 단위를 찾기는 어렵다. 게다가 한번 없어지면
되살아날 수 없는 종과는 달리 사회적 제도와 기구는 되살아날 수 있다.
그 사실은 신화나 중단된 평형과 같은 개념의 적용 범위가 아주 좁다
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한 분야에서 나온 개념이 다른 분야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래서 그런 개념이 설명을 돕는 비유로 가볍게 쓰이는
정도를 넘어서 주장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쓰이면 우리는 그 주장을
찬찬히 살펴야 한다. 지적 사기꾼의 천국인 우리 사회에선 특히 그렇다.
복거일/소설가
문화/과학 98/02/0
6
# 25/166 * 지적 사기꾼 판치는 한국 지식인 사회
요즈음 서양에선 과학전쟁(science wars)이 한창이다. 점점 확대되는
그 전선의 한 쪽엔 과학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쪽엔 과학의 신뢰성을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
과학전쟁이 세인의 눈길을 끌게 된 건 앨런 소컬이란 미국 물리학자가
1996년 미국의 한 문화분야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덕분이다. 그 논문은,
만일 양자역학과 상대성 원리가 통합되면 자유물리학(liberatory physic
s)이 나오리라 주장했다.
그 논문을 실은 잡지가 발간되자 소컬은 그것이 여러 포스트모던 철학
자로부터 인용하고 엉터리 수학으로 그럴 듯하게 치장한 ‘우스개’라
밝혔다. 그가 예측한 대로, 그 잡지의 편집자는 식수(numeracy)가 부족
해서 그럴 듯하게 꾸며진 수학 공식에 든 함정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어 소컬은 프랑스 물리학자와 함께 쓴 〈지적 사기〉란 책에서 프랑
스 지식인이 자신의 저술이 튼실한 바탕을 가진 것처럼 꾸미기 위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과학 또는 수학적 개념을 마구 썼다고 공격했다.
과학전쟁은 실은 뿌리가 깊은 두 문화 논쟁(two-culture debate)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온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대립과 논쟁은
어려운 철학적 문제를 둘러싼 것이고, 자연히 쉽게 풀릴 수 없는 지적
갈등이다.
어쨌든, 소컬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개념을 다른 분야에서 빌려와
자신의 주장을 치장하는 인문학자의 지적 사기를 극적으로 폭로했다.
반론도 거세지만 그의 활동이 좋지 않은 관행을 줄일 것은 분명하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선 그런 활동이 너무 드물다. 실제로는 지적
사기에 대한 비판조차 소개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새로운 세계관〉이다.
그 책은 많이 읽혔고 리프킨은 큰 추종 세력을 거느리게 됐다. 반면에
잘못 적용한 것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엔 그
책만 소개되었지 그것에 대한 비판은 소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틀린 주장이 끼친 나쁜 영향은 서양 사회에서보다 훨씬 컸다.
얼마 전에 번역된 레스터 써로우의 〈자본주의의 미래〉도 자연과학
에서 나온 개념을 경제 분야에 도입해 자신의 주장을 그럴 듯하게 치장
한 경우다. 그는 지질학에서 지판구조(plate tectonics)와 생물학에서
중단된 평형(punctuated equilibrium)을 빌려와 경제적 현상을 설명
했다.
지판구조는 지각이 여러 개의 판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의 움직임이
지각 변동을 일으킨다는 학설이다. 중단된 평형은 생명체의 진화가
대체로 평형을 이룬 종이 조금씩 느리게 바뀌는 시기와 크고 빠르게
바뀌는 시기가 교차한다는 이론이다.
써로우는 지금 세계 경제가 다섯개의 ‘경제 지판’으로 이루어졌고
그것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함으로써 평형이 깨어졌으며, 자연히 새로
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존재가 살아 남으리라 역설한다.
써로우의 주장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그는 물리적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을 사회적 현상에 도입할 때 나오게 마련인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든 경제 지판은 공산주의 종말과 인공 두뇌력 산업에 의해 지배
되는 시기로의 기술 이동, 이전에 결코 본 적이 없던 인구 구성, 세계
경제, 그리고 지배적인 경제·정치·군사적 힘을 가진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다. 이들 다섯은 성격이 서로 달라 한 범주 안에 넣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움직임 사이에 무슨 상관 관계가 있겠는가?
중단된 평형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원래 진화란 개념이 나온
생물세계에서 종과 같은 단위를 찾기는 어렵다. 게다가 한번 없어지면
되살아날 수 없는 종과는 달리 사회적 제도와 기구는 되살아날 수 있다.
그 사실은 신화나 중단된 평형과 같은 개념의 적용 범위가 아주 좁다
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한 분야에서 나온 개념이 다른 분야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래서 그런 개념이 설명을 돕는 비유로 가볍게 쓰이는
정도를 넘어서 주장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쓰이면 우리는 그 주장을
찬찬히 살펴야 한다. 지적 사기꾼의 천국인 우리 사회에선 특히 그렇다.
복거일/소설가